GY's 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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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게된 계기는 아래 서적 때문이다.

게임 회사가 우리 아이에게 말하지 않는 진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 ··· 91087531

 노이즈마케팅에 동참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에 책 소개를 안하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어차피 이 글을 읽는 사람은 호기심 때문에 찾아볼 것 같아서 그냥 링크를 걸었다.
 이런 책에 대해서는 보통 무관심으로 대응하는게 좋은 방법이지만, 사람들이 간과할만한 지점을 지적하고 싶어서 쓰는 글.


 이미 이 책의 발간 후, 저자의 과거 잘못이 드러나며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관련기사 : 지오스큐브 “소프트맥스에 사과합니다” http://www.gamemeca.com/news/news_view ··· 20050406)

 이슈가 될만한 내용으로 책을 냈으니 이러한 과거사가 드러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겠으나, 이걸 문제 삼는 것은 저자에 대한 인신공격 밖에 되지 않는다. 냉정하게 말해서 이것을 가지고 책의 내용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할 수는 없다. 그래서 지금부터 쓰는 글에서는 책 내용을 신뢰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쓰고자 한다.

1. 게임회사 CEO라는 함정

 이 책의 마케팅 포인트는 '전직 게임 CEO가 업계의 비밀을 까발려준다!'이다. 좀더 풀어보면, '게임=나쁜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 "사실은 게임업체 사람들도 '게임은 나쁜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돈벌이 때문에 그 진실을 숨기고 있다"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을 돈주고 사서보는 사람이 있다면 애초에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는 이들일 것이다. 이 책은 그들의 편견을 더 견고히 하고, 그들의 주장에 대한 근거자료가 될 것이다.
 그런데 게임회사 CEO라고 다 같은 게임회사 CEO가 아니다. 게임업계에서 일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흔히 게임회사에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게임을 직접 만들거나 게임에 대한 전문가일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회사와 마찬가지로 게임회사 또한 CEO와 제품을 개발하는 사람 사이에는 역할의 차이만큼이나 제품의 이해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다. 실제로 많은 게임회사에서 게임에 대한 무지한 CEO 때문에 개발자와 디자이너들이 고생하곤 한다. 이러한 얘기는 굳이 필드에 있지 않더라도 온라인 게시판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다.
 또한 많은 IT업체가 개발자들이 모여서 창업하면서 만들어지지만, 이 책의 저자는 그 케이스가 아니다. 서울대 정치학과 출신의 이 저자는 지금까지 아는 바로는, 이 회사의 창립 이전에는 게임을 직접 만든 적이 없다. 즉, 우리가 일반적으로 게임회사 사람이라면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게임을 만드는게 너무 좋아서 몇 달씩 밥먹는 것도 잊고 컴퓨터 앞에 매달려 있는 사람-와는 거리가 멀다.


 당연한 얘기지만, '게임'이라는 콘텐츠를 비판하려면 해당 콘텐츠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저자가 게임 개발자가 아닌 이상, 전문적인 지식을 쌓는 방법은 결국 게임을 많이 하고 연구하는 길 뿐이다. 근데 나의 경우, 초등학교 때부터 게임을 즐겨 해오면서 지금까지 여러 게임 관련 동호회 활동과 또 평론도 수시로 해가면서 국내에 왠만한 매니아들을 알고 있는데 이 분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이 분이 쓴 컬럼을 몇 개 읽어보았는데 그 컬럼의 내용 또한 일반적인 게임 평론과는 매우 거리가 멀다. 게임 전문가라기보다는 사업가의 인상이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게임회사를 운영하면서 게임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쌓았다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이 분이 설립하신 회사를 찾아보았다. 근데 재밌는 건, 내가 이 회사의 이름을 처음 들었다는 것이다. 나는 국내에 '모바일게임'이라는 용어 자체가 없던 시절부터 시작해서 현재까지 주욱- 모바일업계에서 일을 해왔다. 국내에 어떤 식으로 모바일게임 시장이 태동을 했고, 성장해왔으며 지금에 이르러왔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저자의 회사는 매우 생소했다. 책 소개에는 저자의 이력이 화려하게 기술되어 있지만, 딱 잘라 말하건데 모바일게임 업계 내에서는 그다지 유명한 사람, 아니 잘 나가는 사람이 아니다. 아무튼 내가 전혀 모르는 회사, 내가 전혀 모르는 인물이라 검색을 해보니. 회사 약력이 참 재밌었다.
 저자의 회사는 2004년도에 설립한다. 그 때쯤이면, 이미 모바일게임 시장에 한창 불이 붙었을 때다. 반면 진입장벽은 낮아서 기회를 노리는 많이 이들이 모바일게임을 해보겠다고 달려들 때다. 정말 어중이떠중이들이 저마다 회사를 차려서 통신사에 CP등록을 했던 시절이다. 이 회사가 어중이떠중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일단 확실한 건, 이미 시장이 형성된 다음에 뛰어들었다는 거고 그렇다면 게임업계에 대한 혜안을 가지고 시장을 개척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이 회사는 벤처캐피탈의 투자를 받은 후, 창작보다는 제휴 콘텐츠로 승부한다. 게임 개발을 단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대부분 자기 게임 만들고 싶어한다. 더군다나 투자 까지 받았으면서 그 자본으로 타사의 게임을 모바일로 포팅하는 작업을 했다는 것은 애초에 게임 창작 보다는 비즈니스를 우선시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무엇보다 회사가 이러한 비즈니스를 해나가는 상황에서는 개발자나 디자이너는 창작 하는 사람이 아니라 단지 주어진 일을 하는 사람이 된다. 그냥 돈을 받고 주어지는 일을 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리고 이 때에 CEO는 그것을 지시하는 사람일 것이고. 이어서 이 회사에서 출시한 게임 '북천항해기'는 누가봐도 copy game이다. 그러나 나는 사실 copy game 자체를 뭐라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모바일게임 업계에서 copy game은 매우 많고 저작권을 교묘하게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러한 게임을 제작했던 업체는 지금까지도 매우 많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copy game의 발상 조차 처음이 아니라는 것은, 이 회사가 가진 크리에이티브를 의심스럽게 한다. 결국은 다른 업체가 이와 같은 해상 전투 게임을 내놓자 따라 내놓은 것 아닌가? 이후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내가 웹상에서 확인할 수 있는 공식적인 약력에 언급된 게임은 이와 같은 copy game과 제휴게임 뿐이다.

 자금조달 능력이나 업무 제휴 능력, 판매 등에 있어서 재능이 있었던 CEO일지는 모르겠지만, 여기까지만 봐서는 애초에 '게임'에 대한 이해가 있는지, 아니 '창작'에 대한 마인드는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창작품을 보여준 적이 없으니 말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게임을 예술의 한 형태로 규정한 바 있다. 이러한 규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잠깐 등장하는 픽셀아트 하나도 디자이너들이 원화를 그린 후, 다시 PC로 작업하는 방식으로 창작을 해왔기 때문이다. 각각의 게임이 미술, 문학, 음악 등의 여러 분야 예술가들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작품이었고 게임 소비자들은 그 작품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다시 게임 제작자가 되어 그러한 작품을 만들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사례가 없지는 않다. 초창기 패키지 게임 제작사들이 그러했고, 초창기 온라인게임 개발사들이 그러했다. 또한 초창기 모바일게임 제작사들이 그러했다. 그러나 언제나 변함없이 그들의 헌신으로 시장이 형성되면, 게임을 '산업'으로 보고 달려드는 수많은 이들이 단기에 돈 벌 수 있는 수단으로 게임을 제작하여 시장에 제품을 쏟아냈다. 나는 그들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어찌되었든 그들 또한 시장을 키우는데 일조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게임'에 대한 논한다면, 나는 코웃음 칠 것이다.

 지금까지 본 약력만으로도 이 분이 창작 작업에 대해서는 마인드가 없다는 것이 드러나지만, 현재 온라인 상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사건-타회사 개발자를 데려와서 타사의 콘텐츠를 불법적으로 도용한 건-은 결정적으로 이 분이 '게임'을 작품으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제품으로 보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 책에는 아래와 같은 구절이 있다.

대체 어떤 콘텐츠에 이렇게 메시지도 없고 스토리도 없는가? 콘텐츠라고 하려면 분명한 메시지가 있어야 하고, 그로 인한 감동도 주어야 한다. 소설책의 경우. 기본적인 재미 외에 작가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있어서 독자에게 여운을 남긴다. (……) 이처럼 (온라인)게임에는 스토리와 메시지, 감동이 모두 빠져 있으므로 콘텐츠라기보다 ‘시간 때우기 도구’로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 게임 회사가 우리 아이에게 말하지 않는 진실, 71 page

 근데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콘텐츠'가 무엇인지는 아시나요? 한 번도 제대로된 '콘텐츠'를 만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남의 콘텐츠를 배끼거나 단지 플랫폼만 바꿔서 서비스해왔던 분이 '콘텐츠'를 운운하는 건, 우끼지 않나?
이는 마치 자기 소설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남의 소설을 배껴 내던 사람이, 다른 소설가들을 비판하는 꼴이다.

2. 실험을 했다라는 함정

 예전에도 MBC가 '게임이 유해하다'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무리수를 행해서 사회적 지탄을 받았지만, 이 책에서 얘기하는 실험이라는 것도 약간의 사회과학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황당한 내용이다.
 어떠한 가설을 세운 후, 그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실험을 한다면 최소한 대조군이 있어야 한다. 또한 실험과정에서 다른 변수가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다른 변수는 통제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런데 책 내용 어디에도 이러한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사실 이런 개념이 없었다고 보는게 더 정확할 듯 하다. 책의 내용은 실험이라고 말하기도 매우 민망한 수준의 것이다. 그냥 저자 본인이 열심히 게임을 해본 후, 내가 게임을 해보니 안좋은 점이 있더라 라는 자기고백을 기술한 것이다. 물론 이 또한 게임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는데 있어 참고자료가 될 수는 있겠지만, 결국 수많은 데이터 중의 하나일 뿐이다. 더군다나 실제로 그 영향이 게임 때문에 일어났는지도 불분명한 그런 데이터.


결론을 얘기하면, 이 책의 저자는 애초에 말할 수 있는 진실을 가지고 있지 않다. 뭘 알아야 진실이든 거짓이든 얘기할 것 아닌가? 그냥 수많은 사람이 그러하듯, 이 책 역시 저자의 편견에 기초하여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과 경험을 서술했을 뿐이다.



 그리고 게임회사(또는 게임업계 종사자)가 아이에게 말하지 않는 진실 따위는 없다. 오히려 진짜 불편한 진실은 대부분의 부모가 아이들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아는한 게임 중독을 가지게 된 아이들이 최초에 중독되는 지점은 부모가 자기를 이해못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지점이다. 그 지점에서 아이는 다른 수단을 찾고, 아이들의 놀이 매체가 다양하지 못한 우리 나라의 경우는 대부분 그것이 PC게임이다. 그리고 부모가 이 순간을 여러 가지 이유로 알아채지 못하다가 그것이 심화되는게 대부분의 경우다. 사전에 충분한 대화가 이루어지고, 부모와 아이의 소통이 원활한 집안에서 아이가 통제불가능한 수준으로 게임 중독에 빠지는 사례를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
 또한 꼭 게임 업계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적어도 문화 콘텐츠에 대한 보편적인 상식을 가지고 있다면 '게임은 나쁜 것이다'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이는 게임 같은 하나의 문화 장르를 좋고 나쁘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논리적으로 말이 안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소설의 경우, 여러 소설들을 좋은 소설, 나쁜 소설이라고 각자의 주관적 평가에 기초하여 분류할 수 있겠지만 소설이라는 장르 전체를 나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게임도 하나의 문화 장르이기 때문에 마찬가지다. 더 나아가 애초에 창작물에 대한 좋고, 나쁨의 평가도 각자의 주관에 따른 것이지, 절대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좋은 작품, 나쁜 작품은 없다. 마찬가지로 그 어느 게임도 절대적으로 나쁜 것은 없다.


P.S. 글을 쓰다보니 오히려 저자가 더 안스러워진다. 아마 저 책 내고 욕많이 드셨을텐데...
그나마 같은 업계에 있던 사람으로서 욕 먹은 만큼 돈이나 버시길.
(그런 점에서 나도 노이즈마케팅에 동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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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09 15:48 2011/08/09 15:48
Posted by 그냥
Game l 2011/08/09 15:48
아.. 이로써 저의 숨겨둔 취미가 하나 밝혀지는. -_-a (뭐, 굳이 숨길 필요까지는 없지만. 그래도 미소녀 게임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이.....)

최근에 재밌게 하는 게임 중에 하나가 소드걸스입니다.

TCG이고 웹게임입니다. 웹게임이니 설치가 필요없고 웹브라우저에서 클릭으로 간단하게 실행. 게임 방식은 매우 단순하지만 나름 조합이 있어서. 모으는 재미와 그 조합에 따라 매 번 상대와 대전할 때 다르게 판이 벌어지므로 그 속에서 작은 재미가 있습니다.
(사실 문명 처럼 복잡한 게임보다 때로는 이런 단순한 게임이 시간을 더 많이 죽이기 마련이죠.)

아무튼...... 이상 소드걸스 홍보였습니다. (재료카드에 목을 맨 자발적 홍보.)

참고로 소드걸스에는 4개의 소속이 있고. 제가 하고 있는 것은 아래 링크한 '크룩스' 입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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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8 00:50 2011/05/28 00:50
Posted by 그냥
Game l 2011/05/28 00:50

셧다운제는 이미 국내 문제를 넘어서 국제적인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참조 : South Korea to impose midnight online game ban - CNN

이 외에도 해외에서 '셧다운제'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자료는 많다. 그들의 공통된 점은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식의 반응이다. 우리나라에 적용하자면 국제면 엽기뉴스 정도랄까.

무조건 해외 사람들의 시각이 옳고 바르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취급을 받아도 할 말 없는게 그만큼 셧다운제는 그 발상 자체가 민주주의의 보편적 상식을 뛰어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일부 단체와 일부 공무원들은 그들만의 세계에 갖혀서 그들만의 주장을 펴고. 가장 큰 문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그들만의 생각을 강제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참조 : 게임산업 바라보는 ‘그들만의 리그’ - 출처 ZDNet)

셧다운제가 민주주의의 보편적 상식을 뛰어넘는 발상인 이유는, 셧다운제가 한 나라 안에 있는 특정 산업 전체를 강제로 중단 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독재국가에서나 할 수 있는 발상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민주국가에서 살면서도 이러한 발상에서 위화감을 느끼지 못한 건, 우리는 불과 몇 십년 전 유신 시대 때 이와 같은 일을 겪었고. 현 정부 또한 여러 면에서 비민주적인 운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이코노미스트는 이러한 대한민국의 모습들-예를 들면, 미네르바가 단지 경제 예측을 했다는 이유로 구속한 것 같은-을 예로 들면서 우리나라를 Unusually in a democracy 라고 묘사했다. (참조 : Game over - A liberal, free-market democracy has some curious rules and regulations) 셧다운제가 얼마나 비상식적인 제도인가 하는 것은 그 대상을 다른 문화 콘텐츠로 옮겨 적용시켜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밤에 청소년불가판정을 받은 영화를 못보게 하기 위해 극장에 있는 모든 영화의 상영을 금지시킨다고 생각해보라. 극장 업주의 이해관계 문제를 떠나서 다른 모든 이들의 영화 관람 권한을 빼앗았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행히 그들-셧다운제를 주장하는 이들-도 게임산업 전체를 금지시키는 것은 무리수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제한적 조건을 걸어놓았다. 셧다운제를 마치 합리적인 것처럼 포장하는 장치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심야에', '청소년들에게'는 게임을 못하게 하자. 얼핏 들으면 합리적으로 들린다. 근데 용어를 조금만 바꿔보자. '사회적 약자에게', '통금령을 내리자'. 느낌이 오는가?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오프라인에서 통금이 있었다. 셧다운제는 그게 온라인으로 옮겨간 것 뿐이다. '통금'이 비민주적인 행위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근데 그 대상이 청소년이면 민주적인 것이 되는가? 당연히 아니지 않는가. 시간대가 밤이면 민주적인 것이 되는가? 당연히 아니지 않는가. 민주주의 국가라면 애초에 개인이 스스로의 판단으로 선택할 문제를 강제로 금지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 실제로 변호사 한 분께서 이처럼 셧다운제가 헌법상에 명시된 기본권을 침해하므로, 위헌임을 법률으로 입증하기도 하셨다. (참조 : 셧다운제는 위헌이다.)


민주주의 공화국에서는 그 어떤 경우에도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이 마약 처럼, 개인과 국가 전체에 위해를 가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셧다운제 논란의 핵심은 사실 이 지점에 있다. 셧다운제를 주장하는 이들은 게임을 '마약과 같은 유해물'로 간주한다. 근데 정말 게임이 그러한 유해매체라면 현행법이 이를 허용할 리가 없다. 우리가 법률상 금하고 있는 것들은 게임 전체가 아니라 일부 사행성 게임들. 그러니까 게임 보다는 도박으로 분류될 수 있는 것들이다. 그것을 규제하는 것은 그것이 유해한 게임이라서가 아니라, 그건 더 이상 게임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게임의 형태를 빌었지만 실제 내용은 도박이기 때문이다. 방금 전 문장에서도 언급되었처럼 게임은 이처럼 그릇이다. 게임이라는 형태의 그릇에는 다양한 콘텐츠가 담길 수 있고 유해성 여부는 그 안에 담긴 콘텐츠를 가지고 논해야 한다. 이 때문에 '게임=유해매체'라는 등식은 애초에 성립할 수 없는 명제다. 만약 누군가 '영화=유해매체'라고 옮겨 적으면 황당함을 금치 못할 것이다.

이러한 비논리성에도 불구하고, 셧다운제를 밀어붙이고 있는 여가부는 언론에 난 여러 기사들을 근거로 내세우며 안좋은 영향을 미치는 게임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 게임은 아이들에게 안좋은 영향을 줄까? 이에 대해서는 이미 답이 나와있다. 게임과 각종 범죄, 또는 범죄의 근원이 되는 폭력성, 자제력 상실 등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이건 학계의 정설이다. 이를 부정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것은 늘 언론보도 뿐인데, 그 모든 기사들을 살펴보아도 실제로 해당 범죄가 게임 때문에 발생했는지는 알수가 없다. 모든 기사가 처음부터 기자가 '게임 때문이야'라고 단정짓고 써내려 갔기 때문이다. 게임과 해당 범죄와의 연관성을 논리적으로 증명해낸 기사도 없고, 이를 입증한 학계의 연구도 없다. 반면 게임과 범죄 사이에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오히려 게임이 개인의 두뇌 향상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는 정말 많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장문의 글을 쓴 적이 있으니, 보다 자세히 알고 싶은 분은 아래 글을 참조하시길.

참조 : 언론의 무분별한 게임 관련 보도와 게임법개정안의 문제


셧다운제는 이처럼 애초에 게임에 대한 잘못된 편견에 근거하고 있고, 또한 그 방식 자체가 민주주의 정신에 위배되며, 최상위법인 헌법과 배치되는 위헌적인 제도다. 여기까지만 봐도 애초에 셧다운제에 셧 자도 꺼내면 안될 것 같은데. 설사 이 모든 것을 무시하고 일단 시행한다고 해도 해결해야 할 문제점이 산적하게 드러난다.

아래 내용들을 살펴보면, 셧다운제를 입안한 공무원들이 얼마나 생각없이 이 정책을 꺼낸지 알게 될 것이다.

1. 규제 대상의 무차별성
셧다운제는 게임을 규제하는 제도이다. 근데 해당 법안을 보면 정작 정책 입안자들은 게임에 대해서 무지함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아래 법조항을 보면 알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게 개정된 청소년보호법 안에 셧다운제에 대한 부분이다. 문제는 '인터넷 게임'이라는 용어이다. '인터넷 게임'을 규제하겠다고 한 것인데, 그러면 '인터넷 게임'이 무엇인가? 동법에는 아래와 같이 설명되어 있다.

인터넷 게임이란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른 게임물로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항 제1호에 따른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실시간으로 제공되는 게임물을 말한다.

간단히 풀어보면, 네트워크 접속을 하는 게임을 인터넷 게임으로 보겠다는 것인데. 처음에는 PC온라인 게임 대상으로 하던 규제 내용이 갑자기 모바일게임으로 번진 것도 이 때문이다. 자, 예를 들어 스타크래프트1은 인터넷게임인가? 아닌가? 배틀넷 접속을 하는 것으로 봐서는 인터넷 게임으로 봐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이제 문제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요즘 왠만한 패키지 게임 치고 데이터를 인터넷으로 보내거나 받지 않는 게임이 드물다. 하다못해 게임랭킹이라도 서버에 전송하면 인터넷 게임이 된다. 어디 패키지 게임 뿐일까. 이건 그야말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이다. 마음 먹기에 따라서는 모든 종류의 게임에 규제의 칼날을 들이 될 수 있다. 셧다운제가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PC방에서 하는 게임이나, 특정한 유해 게임에만 해당되는 규제가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2. 규제 내용의 과중함
위 조항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셧다운제를 기술적으로 구현할 책임은 게임을 제공하는 업체에 있다. 이 조항 자체가 이미 황당한데, 문제제기는 여가부에서 해놓고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에 대해서는 자신들이 문제를 제기한 게임 업체 보고 하라는 것이다. 이것만 봐도 정말 정책 편하게 만든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어찌되었든 게임 업체들은 셧다운제를 기술적으로 구현해야 한다. 근데 앞서 말했듯이 이게 일부 업체의 몫이 아니고, 대한민국에서 게임을 제공하고 싶은 사람은 모두가 구현해야 한다. 왜냐하면 규제 대상이 무차별적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여기에는 아마추어 동호인들이 만드는 게임도 포함된다. 근데 이거 구현하기 쉬울까? 컴퓨터 프로그램이란게 뚝딱- 하면 만들어지는 거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그만한 여건을 가진 업체들만 이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역으로 얘기하면 그러한 여건을 갖지 못한 이들은 아예 게임을 만들지도 말라는 얘기가 된다. 셧다운제가 실질적으로 대한민국의 게임 산업을 죽이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이 규제는 어쩔 수 없이 국내법에 적용을 받는 한국 회사들에게만 적용된다. 한국 업체들을 지원해줘도 부족할 판국에 오히려 역차별을 가하는 상황이다.

3. 규제의 비실효성
위 2가지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이 규제가 실제로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다. 셧다운제의 목적은 청소년들이 심야 시간에 게임을 못하게 하는 데에 있다. 근데 이것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게임을 하는 이가 청소년인지, 아닌지를 구분해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이를 파악해낼 방법이 없다. 결국 현재 업계에서 통용되는 방식은 주민등록번호나 또는 기타 신원 확인에 필요한 정보를 입력하여 구분하는 것인데, 이 방법은 누구나 아는 것처럼 부모님이나 다른 아는 사람의 정보만 도용하면 무용지물이 된다. 이미 이와 같은 방식으로 청소년이용불가 판정을 받은 온라인게임을 청소년들이 하고 있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이 제도가 시행된다고 해서 달라질 사항은 없다. 오히려 그동안은 부모의 허락하에 야간에 1~2시간씩 게임을 하던 얘들마저 이제는 불법적인 개인정보도용을 하게끔 만들 뿐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게임 이용자들의 평균연령이 증가할 듯. :) )
그래도 그나마 PC온라인게임은 낳은 편이다. 모바일게임에서는 이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패키지게임에서는? 모바일의 경우 디바이스로 파악해야 할 텐데, 만약 아빠 폰을 빌려서 게임을 한다면? 이 외에도 여러 가지를 구멍을 생각해볼 수 있는데. 중요한 점은 아무리 규제하려고 해도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결국 그 한계를 인식하고 어느 지점을 정해서 별 실효성은 없지만 그래도 장치를 만들었다는 심리적인 위안을 삼을 수 밖에 없는데. 이러한 면에서만 본다면 지금의 게임위를 통한 사전심의 제도로 충분하다. 청소년에게 유해한 게임은 아예 청소년이용불가 판정을 매기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특정한 시간이 아닌, 아예 그 게임을 못하도록 장치를 하고 있고. 이런 상황에서 다시 추가로 특정 시간대에 사용을 못하게 막겠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애초에 청소년이용불가 게임이라면 심야 시간이 아니더라도 청소년이 그 게임을 할 수 없을 것이고, 만약 청소년은 못하게 막은 그 장치를 명의 도용 같은 방법으로 뚫었다면, 이미 게임 프로그램은 그 사용자를 성인으로 간주하고 있을 것이므로 셧다운 프로그램을 동작시키지 않아 규제가 작동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4. 개인정보 유출 문제
우리는 종종 각 회사들의 개인정보 유출 기사를 접한다. 그리고 그렇게 개인정보를 유출하게 된 회사들은 대부분 작은 회사들이 아니다. 사내 보안 담당자도 있고 보안 관련해서 예산도 집행하는 회사들이다. 그럼에도 개인정보 유출 문제는 심심찮게 발생한다. 이는 보안 문제에 있어 안전지대가 없음을 알려준다. 그러면 보안 문제를 잠식시킬 가장 안전한 방법은 무엇일까? 그건 아예 개인정보를 가지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전세계의 흐름은 이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조금만 눈을 돌려 해외 사이트나 해외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을 이용해보자. 회원가입에 있어 우리 나라처럼 개인의 상세한 정보를 요구하지 않는다.
서론이 길었는데, 이는 게임 서비스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개인정보를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게임은 굳이 개인정보를 받을 이유가 없다. 해당 게임에서 그것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셧다운제는 게임 이용자가 청소년인지, 성인인지를 구분해야 하기 때문에 어찌되었든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받아야 한다. 여기서 다시 등장하는 문제는 앞서 얘기한 규제 대상의 무차별성 때문에 거의 모든 게임이 개인정보를 이용자로부터 받을 것이라는 점이다. 어떠한 사태가 벌어질지 예상이 되는가?
게임업체라고 엔씨소프트 처럼 스포츠 구단을 만들 정도의 큰 회사만 있는게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런 업체는 극소수고 대부분의 업체는 지극히 열악하다. 그런 열악한 회사들이 모두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개인정보 수집에 탐이난 개인이 게임회사를 차리고, 셧다운제를 빌미로 다수의 이용자들로부터 합법적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도 있다. 자, 이럴 경우 그러한 업체들을 통해 유출되는 개인정보들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셧다운제는 해당 제도로 인해 발생하는 보안 문제에 대해 아무런 고려가 되어 있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구현의 책임을 게임 업체에게 넘겨버렸기 때문이다. 나중에 보안 사고가 나도 그건 모두 업체 책임으로 돌릴 것이다. 그러나 셧다운제를 하지 않으면 애초에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않는다. 아니 최소한 정책을 입안하는 쪽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예상하고 그에 따른 대안까지 같이 제시해야 한다. 그게 상식이다. 그러나 지금의 셧다운제에는 이러한 고민이 전혀 없다.
(참고 : 개인정보보호 사각지대 `게임 셧다운제`)

5. 직업으로서의 게임을 하는 이들에 처우 문제
우리나라는 e스포츠 종주국으로서 게임 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프로게이머가 있다. 그리고 그들 중에도 청소년이 있다. 마치 프로축구단이 있으면, 청소년이나 유소년 팀이 있는 것 처럼 말이다. 축구선수에게 축구를 못하게 하는 것은 매우 잔인한 일일 것이다. 그들은 단순히 유희로 축구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습량이 곧 실력이고, 본 경기에서 이기고, 지고로 나타나는 그들의 세계에서는 다른 경쟁 선수들과 싸워 이기려면 한 시간이라도 더 연습을 해야 한다. 프로게이머들도 마찬가지다. 근데 셧다운제가 시행되면 청소년 프로게이머들은 0시 이후에는 강제로 연습을 중단해야 한다. 심지어 해외 연습 상대의 경우는 시차 때문에 새벽에만 경기가 가능한 데도 그들은 새벽에는 해서는 안된다. 이건 선수 개인의 성공과 행복이 달린 문제이기도 하고, 더 나아가 국가 역량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의 e스포츠 문화는 전세계 게이머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전세계의 많은 게이머들이 한국의 게이머들을 동경하며, 이 때문에 한글을 배우고, 한국문화를 배우고 있다. 드라마, 영화에서도 한류가 있다면 e스포츠에는 프로게이머들을 중심으로한 한류가 있다. 근데 한국 게이머들이 셧다운제라는 제도 때문에 게임을 못하는 현실을 보면 어떻게 생각될까?
아마 여가부에서는 여기까지는 미처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게임 하는 것=나쁜 짓'이라는 등식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는 e스포츠 자체가 아예 받아들일 수 없는 문화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들이 받아들이든, 안받아들이든 이미 존재하는 현실이고 그들이 입안한 정책은 이들에게 직접적으로 타격을 입힌다. 그리고 향후 게임올릭픽 같은 국가대항전 등에서 성적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것이다.

6. 스마트폰 게임 시장의 위축
현재 대세를 이루고 있는 스마트폰 생태계의 축은 구글의 안드로이드 마켓과 애플의 앱스토어이다. 근데 우리나라는 게임에 대한 사전 심의 제도 때문에 두 회사 모두 국내 계정에는 게임 카데고리를 오픈하지 않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국내 게임업체들이 아이러니하게도 국내에서는 스마트폰용 게임을 제공하지 못하는 상황을 낳고 있다. 일부 해외 사용자를 위한 스마트폰 게임을 만들 수 있는 업체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국내 모바일게임 업체는 이 때문에 피쳐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는 시기에서 도태되고 있는 실정이다. 뒤늦게 각 이동통신사에서 주관하는 스마트폰 마켓이 생기기는 했지만 이는 여전히 글로벌 마켓에 비하면 규모가 작고, 무엇보다 전세계가 함께 경쟁하는 플랫폼에 자국의 언어로, 자국민들을 대상으로한 서비스를 올리지 못한다는 것은 매우 불합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근데 셧다운제가 시행되면 이러한 상황은 더 지속될 것이다. 왜냐하면 셧다운제가 시행되면 애플이나 구글 같은 글로벌 사업자들은 한국 마켓에 올라오는 게임들이 모두 셧다운제 장치를 달았는지를 확인해야 하는 책임을 지게 되는데, 그게 현실적으로 어려울 뿐더러 또 그들의 지금까지 사업 방식이나 정책 방향에 비추어 볼 때 이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셧다운제가 시행된다면 계속해서 이 두 사업자는 한국 시장에서는 게임 카데고리를 오픈하지 않을 것이다.
큰 돈을 벌 수 있는 시장을 앞에 두고 손만 빨아야 한다는 것은 정말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정부에서도 오픈마켓에 대해서는 사후 심의를 하는 게임법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셧다운제가 시행되면 이 개정안은 의미가 없게 된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쓰는 마당에 우리는 정부가 나서서 지난 몇 년간 훼방을 논 것도 모자라 앞으로도 계속 못하게 만드는 꼴이 되는 것이다.


위 6가지 문제들에 대해서 셧다운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 시민단체나 정책 주체인 여성가족부가 시원하게 대답을 한 적이 없다. 동문서답을 하거나 아니면 계속 '게임은 나빠. 그러니까 셧다운제를 해야해'와 같은 자기주장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어찌되었든 지금 법사위는 통과되었고,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는 본회의 통과만이 남아있다. 지금까지의 선례를 보면 본회의에서 부결되는 일은 없다고 한다. 그러면 결국 일사천리로 이 법이 시행되는 일만 남은 상황이다.

정말 어딘가에 가서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

끝으로 이 글을 읽는 게임 업계에 계시지 않은 분들. 이것이 남 얘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셧다운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무차별 금지령이기 때문이다. 셧다운제를 허용한다면, 셧다운제를 옹호하기 위해 사용했던 논리로 다른 문화콘텐츠나 다른 산업을 규제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이유로 어느 시간 대에 음악을 못틀게 하거나 영화나 드라마 상영을 못하게 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셧다운제의 칼날은 언제든 당신이 업으로 삼고 있는 분야로 날아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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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1 19:01 2011/04/21 19:01
Posted by 그냥
Game l 2011/04/21 19:01
 이 땅의 만화, 게임 같은 서브컬쳐에 대한 편견과 왜곡된 인식은 익히 알고 있지만 그래도 한동안은 매스컴에서 조용하더니만 요즘 들어 다시 여러 매체에서 떠들어되고 있다. 그리고 그 정점을 찍은 것이 MBC 뉴스데스크의 PC방 실험! 이미 'MBC의 무리수'라는 이름으로 인터넷에서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으니, 여기서는 더 이상 언급할 생각이 없다. 그 보도가 왜 무리수였는가에 대해서는 deulpul님이 정리를 잘 해주셨으니, 아래 링크를 참조하기 바란다.

'PC방 실험'을 한 기자의 발언

http://deulpul.egloos.com/3575871#3575871_1



근데 정말 게임은 안 좋은 것일까?

게임의 문제성을 지적한 보도들의 공통된 문제점은 일단 결론을 내고 그 뒤에 부연 설명을 붙인다는 점이다. 그러한 보도들의 기사 이면에는 한결같이 '게임을 하는 것=나쁜 짓'이라는 생각을 깔고 있다. 근데 기자들이 이러한 기사를 쓸 수 있는 배경에는 우리 사회에 그와 같은 인식을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당장 멀리 볼 것도 없다. 지금 이 순간 우리 나라 대부분의 집에서 컴퓨터 게임은 부모들의 통제 대상이다. 최근 개정되는 게임법에 여성가족부가 목소리를 내는 것도 이러한 학부모들의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해당 부서에 전달되기 때문이다.

근데 나 자신도 어려서부터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자랐고, 내 주변에는 그러한 사람이 매우 많지만 '컴퓨터 게임' 자체가 '인생을 망치는 악'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적절한 스트레스 배출구가 없는 도시에서 컴퓨터게임만큼 저렴하고 쉬운 스트레스 해소법은 없다. 요즘 아이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성인 못지 않다는 점을 생각하면, 애초에 문제의 포인트는 '게임을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고, '아이에게 쌓인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어줄 것인가?' 이다. 게임을 좋아하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가 그 부문에서 적절한 조치를 못한 경우가 많았다. 아이는 계속해서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데 부모들은 아이와 함께할 절대 시간 자체가 적거나 아니면 있더라도 '네가 알아서 풀어'라는 식이니. 그와 같은 환경에서 아이들은 손쉬운 탈출구로 '게임'을 선택하는 것이다.

사실 게임이 아이의 폭력성, 아니 그 어떤 범죄에도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는 연구 결과는 없다. 예전에 어느 공청회에서는 이런 얘기도 있었다. 정부 부처 쪽 사람이 "게임을 오래하고 많이 하면 뇌가 마약중독자의 뇌처럼 변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라는 얘기를 하길래, 게임 업체에서 "그런 의학적, 과학적으로 엄청난 발견이 왜 사이언스지에 논문으로 발표되지 않는지 모르겠다"라고 응수한 적 있다. 현재 학부모 단체들, 그리고 여기에 영향 받은 정부 부처에 관계자들이 모두 이처럼 아무런 객관적 자료 없이 '카더라 통신'으로 중요한 정책 결정을 하고 있다. (참고글 : [기자석] '게임'을 비난하려면 객관성부터 갖춰라. )

반대로 게임이 오히려 순 기능을 하고 있으며, 앞서 언급한 그런 생각들이 단지 편견에 지나지 않음을 밝혀주는 연구 논문과 자료들은 매우 많다. 아래는 그 중에 대표적인 Grand Theft Childhood이다.

Grand Theft Childhood

http://www.grandtheftchildhood.com

게임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제목만 봐도 알아챘겠지만 이는 폭력게임의 대명사인 GTA를 패러디한 제목이다. 본 사이트는 하버드 메디컬스쿨 정신위생과 미디어 전문의 로렌스 커트너와 셰릴 올슨의 연구 결과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연구는 미 정부의 요청으로 150만 달러의 예산을 들여서 1254명의 아이들을 다년간 조사한 결과이다. 결론은 '아무 관계 없음(no link between violent video games and headline-grabbing crimes)'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여전히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그대로다. 또한 누군가 지금 이 글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게임이 부정적이지 않다'라고 얘기하려고 치면 바로 반박이 날라온다. 이는 게임같은 유희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우리 사회 인식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즉 애초에 게임이 문제였다기보다는 아이의 경우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이 문제였던 것이고, 성인이라면 일을 해서 돈을 벌어 오지 않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다만 이러한 이들이 택하는 손쉬운 회피 방법이 '게임'이기에 그 책임을 게임에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게임이 아니라, 애초에 자제력을 갖지 못한 그 개인이다.

자제력이 없는 사람은 게임이 없다고 해서, 또는 게임을 못하게 규제한다고 해서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다른 대체 수단을 찾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청소년의 경우, 그 대체 수단은 대부분 컴퓨터 게임보다 훨씬 위험하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는 것들이 될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보통 청소년 시기에는 강한 자극을 얻기 위해 금지된 것에 도전하는데, 오프라인에서 금지된 대부분의 유희들은 법죄와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게임을 못하게 되었다 해서 그 사람이 갑자기 바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성인의 경우, 게임 다음으로 쉽게 찾는 대체제가 술, 담배인데 다들 알다시피 알코올 중독과 오랜 흡연은 게임 중독 보다 개인의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이 크다.

자제력이 없는 이에게는 무조건적인 금지보다는 소프트한 대체제를 제공하는게 좋은 방법이고, 사실 게임은 이러한 대체제로서 이미 훌륭한 수단이다. 그러나 굳이 게임을 못하게 하겠다면 최소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이 제공되어져야 한다. 그런 것 없이 못하게 하겠다는 것은 오히려 더 큰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접근은 '게임'이 아닌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매스미디어가 보도하는 범죄의 원인은 모두 그 사람에게 있다. 술이나 기타 약물은 사람의 뇌에 영향을 주어 자제력을 상실하게 함으로 범죄에 직접적인 원인이 되지만 게임을 비롯하여 영화, 만화 등 대부분의 엔터테인먼트는 어디까지나 간접체험의 도구일뿐. 그 내용을 현실에서 실현할 지 여부는 본인의 의사이다. 이러한 엔터테인먼트들이 범죄를 학습 시켜 줄 수는 있겠지만 정상적인 사고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실생활에서 범죄를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학습 효과 면에서 보면 이러한 엔터테인먼트 중에서 게임만이 월등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오히려 공중파를 통해 정기적으로 반영되는 TV드라마가 더 강렬하고 무차별적으로 전파되고 있지 않은가? 따라서 대한민국 사람들의 평균적인 사고력이 수준 이하라서 자신이 본 범죄행위를 그대로 현실에 옮기는 잠재적인 모방범죄자들이라면 게임을 규제하기에 앞서 당장 TV드라마의 범죄 장면부터 없애야 한다.

또한 '중독'이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도, 게임 중독의 모습은 여타 다른 유희와 별반 다르지 않다. 내가 아는 분 중에 한 때 '낚시 중독'에 빠진 분이 있는데, 그 분은 퇴근만 하면 차를 몰고 낚시하러 갔다. 주말도 물론이고. 그것 때문에 심각한 가정 불화를 겪고 나중에는 스스로 그 취미를 정리하셨다. 게임중독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어떻게 보면 강가에 오래 앉아 있는 대신 PC앞에 오래 앉아 있을 뿐이다. 그러면 대한민국의 가정주부들은 낚시에도 셧다운제를 도입하여 출입을 막을 것인가?

대부분의 중독자들은 처음부터 무언가에 중독되지 않는다. 보통은 타인과 소통을 이루지 못하면서 다른 대상을 탐하다가 차츰 거기에 중독되는 것이다. 이를 치유하는 근본적인 방법은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그들과 소통하는 것이지 그의 취미를 못하게 막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를 못하게 하면 오히려 더 하고 싶어진다는 것은 다들 스스로의 체험을 통해 잘 알지 않는가?

게임법 개정안의 문제


근데 왜 잠잠하던 게임을 비난하던 보도가 최근 여기 저기 나오는 것일까? 알고보니 게임법 개정이라는 이슈가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게임법 개정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고 오히려 작년에 되었어야 할 일이 해결되지 않고 질질끌려 올 해까지 온 것인데, 처리가 늦어지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지금 개정되는 내용도 문제이다.


문제의 핵심은 아래 천정배 의원님 블로그에 잘 정리되어 있다.




게임법 2월 국회 어떻게 처리되어야 할까요? @freshairda님 질문에 대한 답변

http://jb21.tistory.com/3118


앞서 얘기한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인지, 우리 나라 정부의 게임 관련 법안은 규제 중심이었다. 애초에 규제 대상으로 접근한다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이러한 규제도 각 기관별로 중복되게 이루어진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또한 시대는 매우 빠르게 바뀌어가고 있는데 법은 옛날 그대로라는 점이 문제다. 안철수 박사님은 국내 IT업계를 바라보며 '잃어버린 3년'을 얘기한 적이 있다. (참고글 : Bloter.net : 안철수, “소셜과 모바일 열풍 3년동안 우리는 뭘했나” ) 이는 게임 업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바일게임의 경우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는 변화, 또 게임업계에서 새로이 떠오르는 SNG에 대해서 관련 법안은 전무하다. 오히려 이 정부들어 관련부서는 없어지거나(정통부 폐지), 다른 기관에 흡수 되면서(게임산업진흥원이 콘텐츠진흥원으로 흡수) 이전에 해왔던 일들 조차 제대로 인계가 안되고 서로 책임을 떠넘기면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현재까지 애플과 구글은 자사의 App 마켓에서 우리 나라의 경우, 오픈마켓에 대한 관련법안이 없는 상황에서 현재의 사전심의제도는 수용할 수 없기 때문에 게임 카데고리를 오픈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 업체들은 편법으로 다른 카데고리에 올리지 않는 이상, 정상적으로는 스마트폰 게임 서비스를 아직까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스마트TV, 인터렉티브TV의 개념이 나오면서 이제는 TV에서도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이런 게임을 팔 수가 없다. 우리 나라에서는 TV에 공급되는 콘텐츠는 방통위의 심의를 받아야 하는데, 동시에 이것은 게임이므로 게임위의 심사도 받아야 한다. 근데 막상 두 기관의 심위를 모두 받아서 게임화면에 등급을 표시하면 위법이 된다. (방통위는 얼마 전 두 개 이상의 등급 심위를 표기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면 최소한 둘 중에 하나만 심사를 받아도 되도록 정부에서 문제를 정리해주어야 하는데 서로 책임만 미루고 있다. 기술은 빠르게 진보하고 이에 따라 사람들의 생활방식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법은 이를 전혀 못 따라가고 있다.

지금은 어떠한 규제이든 간에 전혀 실효성을 가질 수가 없는 상황이다. 만약 이번 개정되는 법안에 나오는 '셧다운제'가 적용된다고 해도 막을 수 있는 것은 PC방에서 온라인게임을 하는 아이들 뿐이다. 집에서 플레이스테이션이나 X-Box를 가지고 밤새 노는 아이들은 막을 방법은 없다. (설사 그들이 성인용 콘텐츠를 용산에서 구매해 와 가지고 한다 해도) 오히려 이 셧다운제는 대부분의 건전한 SNG들의 성장을 가로 막아, 한국 게임 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벽이 될 것이다. 또한 이미 글로벌하게 단일 시장으로 가고 있는 네트워크 게임 마켓에서 글로벌 기업들은 그냥 한국에서는 게임 마켓을 오픈하지 않는 쪽으로 갈 것이고, 이는 결과적으로 우리 나라의 손해이다.

게임 산업을 바라보는 올바른 접근

앞서 얘기한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우리 나라에서는 규제 일변도의 정책이 펼쳐지고 있지만, 게임 산업은 그 규모 뿐만 아니라 문화 전반에 걸친 영향력 면에서도 더 이상 서브컬쳐로 보기 어려운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다.

이제 게임의 순기능을 보자라는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얘기이다. 만약 누군가 영화의 순기능을 운운한다면 좀 웃기지 않겠는가? 그것이 순기능을 할지, 악기능을 할 지는 전적으로 영화를 보는 사람의 몫인 것 처럼, 게임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당장 영화 산업 처럼 정부에서 지원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영화가 대한민국에서 이 정도 대접을 받기 까지는 많은 영화인들의 노력이 있었듯이, 아마 앞으로도 많은 게임인들이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앞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잘못된 편견에 기반한 무식한 얘기는 안 나왔으면 좋겠다. 일부 폭력적인 내용이 담긴 영화가 있다 해서 영화관에 '셧다운제'를 도입한다거나 모든 영화에 일률적인 규제를 가하지는 않지 않는가? 게임이 아니라 무엇이 되었든간에 문화 콘텐츠 산업에 그런 무식한 짓을 자행하는 것만은 그만했으면 한다.

그리고 제발 누가 범죄를 저질렀거든, 그 사람이 무슨 게임을 했는지 살펴보지 말고 그가 왜 그런 범죄를 저지르는 상황에 까지 이르렀는지 그 사람 주변을 살펴봤으면 좋겠다. 매스컴도 그런 것을 보도해서 우리 사회에서 소외받는 사람들이 좀 더 따뜻한 관심을 받게 하는게 낫지 않겠나. 괜히 그런 일 터질 때마다 엄한 게임 업체만 마녀사냥 당하게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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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1 01:41 2011/02/21 01:41
Posted by 그냥
Game l 2011/02/21 01:41
이런 건 처음 써보는 듯한데...
(세상에 게임 관전평이라니! 영화나 책에 대한 소감이라면 몰라도...)

워낙 명경기였고, 그냥 한 번 보고 말기에는 여운이 많이 남는 경기라 글을 올립니다.

잘 모르는 분들에게는 무슨 결승 경기도 아니고, 8강전에 소감을 올리느냐는 생각을 하실지도 모르지만. 한국 프로게이머 역사, 아니 세계 프로게이머 역사에서 저 두 명의 이름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 지 인터넷에서 찾아보시고, 이분 둘이 오랫동안 준비해서 새로운 게임에서 만난 공식 경기라는 것을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1. 임요환 vs 이윤열의 경기를 보기에 앞서

 이윤열하면 떠올릴 수 있는 건 빠른 APM(Action Per Minute, 스타에서 손놀림 속도를 재는 단위)과 이를 바탕으로 한 생산력이다. 상대와 똑같은 자원에서도 이윤열은 더 많은 유닛을 뽑는데다가 그러한 유닛들을 빠른 APM을 가진 선수답게 모두 효율적으로 콘트롤해줌으로써 승리를 이끌어낸다. 반면 임요환은 지금까지의 경기에서도 보여주듯이 다른 프로게이머들에 비해 오히려 APM이 낮은편에 속한다. 당연히 임요환의 스타일은 많은 유닛을 뽑거나, 또 이러한 많은 유닛을 동시 콘트롤하는 플레이가 아니다. 임요환의 장점은 판을 읽는 감에 있다. 또한 개별 유닛 하나, 하나를 세밀하게 콘트롤 하는데 있어서는 세계 제일이라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뛰어나다. 이를 바탕으로 임요환이 보여주는 것은 주로 심리전이다. 스타크래프트(이하 스타) 같은 전략 게임은 기본적으로 가위, 바위, 보 게임이다. 각 유닛 간에는 물론이고, 종족 간에도, 또 빌드 간에도 물고 물리는 관계에 놓여 있다. 이것을 얼마나 더 꼬고, 얼마나 더 많은 경우의 수를 만들어내느냐. 그것이 스타와 같은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기획자들이 하는 고민이다. 임요환은 이에 대한 분석력이 매우 뛰어나다. 사실 임요환은 뛰어나다는 평가만으로는 부족한 게, 스타1 시절은 물론 스타2까지 테란의 새로운 빌드 창시자로 널리 알려졌다. GSL 시즌1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김성제가 사용한 빌드가 임요환이 만들어 준 것이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며, 이 밖에도 수많은 빌드가 임요환에 의해 개발되고, 또 수많은 유닛의 새로운 콘트롤 방법이 임요환에 의해 개발되어 베틀넷을 통해 퍼져 나갔다. 임요환의 경기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재미를 가져다주는 이유도 임요환 스스로 이처럼 새로운 시도를 공식 경기에서도 많이 선보이기 때문이다.
 스타 대회에서 보여주는 선수의 플레이 방식에는 큰 두 가지 양상이 있다. 이를 각각 한 단어로 정리하면 '전략'과 '물량'이다. 각 대회 때마다 선수가 바뀌고 선수가 플레이하는 종족도 바뀌고 하였지만, '전략'과 '물량' 이 두 가지는 각 선수의 플레이 성향을 정하는 큰 두 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두 가지 능력에 대한 밸런스만 각 선수마다 다를 뿐이다. 테란 플레이어로서 임요환과 이윤열은 이 양 극단에 있는 선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임요환에게도 전략만 있는 것은 아니고, 이윤열에게도 물량만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이후 등장한 선수 중에 전략이나 물량이 이 두 선수보다 뛰어난 선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두 가지 사조를 만들어낸 개척자가 이 둘이기 때문에, 우리는 전략가로서 임요환을, 멀티콘트롤을 하는 천제 플레이어로서는 이윤열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선수가 어느샌가 서서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혀 가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나이가 들면서 이 둘의 실력이 노후화 되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선수보다는 게임이 노후화 되었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 스타리그 초창기에 많은 게이머들이 스타를 바둑과 비교하면서 스타 또한 차세대 스포츠로서 인정받고자 하였는데, 그때마다 바둑을 좋아하는 분들은 바둑과 스타가 만들어낼 수 있는 경우의 수의 차이를 얘기하곤 하였다. 근데 이는 스타를 좋아하는 게이머로서는 가슴 아픈 얘기지만 솔직히 차이가 많이 난다. 스타1은 10년이 넘은 게임이다. 근데 게임 대회가 열리고 이 대회에 나가서 게임을 하는 것으로 먹고 사는 프로가 나오고, 그러한 프로를 운영하는 구단이 생겨서 운영될 정도로 한국에서는 스타1이라는 콘텐츠를 심하게 소비하였다. 정확하게 어느 시점을 꼭 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마치 MMORPG에서 만랩을 찍은 느낌이라고 할까? 그나마 임요환 같은 선수가이 땅에 많이 나와서 스타1의 생명력이 지속하기는 했지만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어느샌가 경기가 식상해져갔고 선수의 실력도 상향 평준화되었다. 임요환이나 이윤열의 실력이 줄어든 게 아니라 다들 그 수준으로 성장해버리니, 스타1 대회에서 이러한 스타플레이어가 입상하는 일도 줄어들었다. 이렇게 스타1이 소리없이 쇠락해간 시점에서 블리자드는 스타2를 출시했고, 스타1시절 최고의 개척자였던 이 두 선수가 스타2 공식 대회에 나타난 것이다. 이 둘 중 어느 한 명이 보여주는 경기만으로도 가슴이 설레는데, 두 개척자가 만났으니 얼마나 가슴이 설레겠는가. 그렇게 가슴이 설렜던 올드 게이머 중의 한 명이 바로 나였다.

2. 1 Set - MAP:금속도시

 이윤열의 물량이 스타2에서도 변함 없다라는 것은 이전 경기에서 이미 보여준 바 있다. GSL 시즌1 누구도 보여주지 못한 다수의 탱크와 마린. 사실 스타2로 넘어오면서 테란이 프로토스 못지않은 특기를 가진 유닛들이 많이 생겨서 탱크, 마린 같은 클래식한 병기들이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윤열은 누가 올드 게이머 아니랄까봐 이 두 개만 미친 듯이 뽑아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을 GSL2에서 보여주었다. 또한 현실감 없는 마치 마법 같은 유닛의 특수능력을 사용해서 이기지 않고, 전략시뮬레이션의 정석이라 할 수 있는 진형을 짜서 상대의 공격을 방어하고, 경로를 차단하고, 역으로 공격해가는 플레이를 보여줌으로써 이것이 진짜 전략적인 플레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러한 플레이는 당연히 기본적으로 다수의 유닛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미 GSL2에서 '앞마당 먹은 이윤열의 무서움'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이윤열에게는 물량을 뽑아낼 수 있는 앞마당을 언제 먹느냐가 매우 중요한데, 이날 대회에서는 시작하자마자 앞마당에 사령부를 건설함으로써 팬들의 기대를 자아내게 했다. 그런데 사실 이 빌드(원 병영 더블 - 1개의 병영을 짓고, 바로 두 번째 사령부를 가져가는 것)의 창시자는 임요환이다. 당연히 임요환이 이를 발견한다면 이에 대한 파해법을 모를 리가 없었다. 테란 각 건물의 건설시간, 유닛이 나오는 시간. 모든 시간을 하나하나 기억하는 그가 적절한 찌르기 타이밍을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이윤열이 이 빌드를 시도한다는 것은 그만큼 이후 다수의 유닛을 콘트롤 해나감에 있어 임요환의 타이밍 러쉬를 모두 막아낼 수 있을 만큼 자신감이 있다는 거였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임요환은 적극적으로 정찰을 해나갔고 이윤열은 임요환의 정찰 나온 건설로봇을 앞마당에 들어오기도 전에 다수의 해병으로 제거했다.
 예전에 어느 게임평론가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스타 게임의 양상을 크게 '부자'와 '거지'로 나누면서, 임요환은 '나는 거지로 플레이할 테니, 너도 거지로 플레이 해'고, 이윤열은 자신이 부자로 플레이해야 하는 만큼 상대에 대해서 어느 정도 멀티를 허용하는 플레이라고. 그만큼 임요환은 멀티를 빨리 늘려서 물량 싸움으로 가기보다는, 끊임없는 견제를 통해 상대의 생산능력을 저하시키는 플레이를 한다. 아니나다를까 이번 판에서도 임요환의 선택은 투 가스-두 개의 정제소(Refinery)를 초반에 먼저 짓는 전략을 일컫는 말-를 바탕으로 한 빠른 밴시(Banshee)였다. 정찰과 견제가 쉬운 밴시를 뽑은 거였다. 여기에 은폐 업그레이드까지 해줌으로써 밴시를 이용한 견제에 더 힘을 실어주었다.
 사실 원 병영 투 빌드로 갔는데 빠른 밴시-그것도 은폐 업그레이드까지 된-가 나온다면 일반적인 게이머는 GG다. 그리고 프로게이머라면 막아내기는 하겠지만 어느 정도 피해를 보게 되어 있다. 근데 역시 이윤열. 이 정도로는 밀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미 예견했다는 듯, 해병-그것도 초반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다수의 해병-이 본진과 멀티 양쪽에 미리 밴시 동선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여기에 해병이 움직이면서 총을 쏘는 무빙샷! 멋진 콘트롤까지. 임요환의 첫 밴시가 허무하게 떨어진 것은 임요환이 못했다기보다 이윤열이 매우 대응을 잘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밴시를 만드는데 드는 자원을 생각한다면 상대적으로 임요환의 병력은 이윤열보다 적을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기본적으로 이윤열이 동일 자원에서도 임요환보다 병력을 단시간에 많이 뽑아내는데, 이번 판은 임요환이 멀티도 늦었고, 앞서 두 개의 밴시가 모두 실패한 시점에서는 당연히 병력이 적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때가 최고의 공격 타이밍일 것이다. 임요환이 새로운 병력을 뽑아 진형이 갖추어지기 전에 찔러야 했다. 이윤열은 전 병력을 동원해서 임요환의 앞마당으로 공격을 간다. 솔직히 나는 이 시점에서 임요환이 GG치고 나갈 줄 알았다. 일단 이윤열이 데리고 간 바이오닉 병력의 숫자가 많았고, 더군다나 해병 only 조합도 아니고, 오랫동안 테란의 사기 유닛이라고 불렸던 불곰이 다수 혼합된 공격이지 않은가? 벙커 하나 없이 소수 병력으로 막아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 않았다. 근데 이 순간 임요환의 선택은 이미 상대방 진영으로 날아가고 있던 밴시를 그대로 보내서 견제를 보내고, 상대의 병력은 건설로봇으로 상대하는 거였다. 솔직히 이 순간만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매우 위태롭게 보였는데. 정말 말도 안되게 임요환이 건설로봇을 콘트롤해서 그 공격을 막아내는 것을 보고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그리고 상대의 병력이 모두 공격에 나간 사이. 밴시는 상대 진영의 건설로봇들 다수 잡아줌으로써 오히려 경기 양상을 비슷하게 만들어버렸다. 스타2에서 건설로봇에게 공격명령을 내리면 '이거 미친 것 아냐?'라고 건설로봇이 말을 한다. 아... 근데 임요환의 건설로봇은 해병, 불곰보다 위대했다. T_T 역시 진정한 마이크로 콘트롤의 달인이었다.
 이어서 벌어지는 잴나가 감시탑을 두고 벌어진 양 선수 해병의 교전은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고수들의 싸움이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모습이었다. 흔히 만화에서 무술 고수 두 명이 싸우면, 서로 싸우지 않고 상대를 지켜보기만 한다. 그러면 대중은 왜 안 싸우는지 의아해하는데, 이때 다른 고수가 보통 설명을 해준다. 서로 틈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 듯, 사이에 뭘 던져놓으면 서로 동시에 이를 맞춘다. 이러한 모습을 스타2에서 보여준 것이 잴나가 감시탑에서의 교전이었다. 언뜻 보기에는 해병을 서로 1명씩만 보내서 위치를 뒤바꾸는 싸움이 코믹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이 시점을 생각하면 여기를 점령하여 시야를 확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2차 러쉬를 들어가려던 이윤열은 스캔을 통해 완벽하게 수비 진영을 갖춘 임요환을 보고 회군을 하고 정찰용으로 해병 1기를 임요환 앞마당 앞에 있는 잴나가 감시탑에 세운다. 이는 임요환이 언젠가는 앞마당에서 수비진영을 풀고 나올 것이기 때문에, 그 타이밍을 알아내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는 임요환에게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나오는 타이밍을 상대에게 들켜서는 안될 뿐더러, 보나 마나 이미 대규모 병력이 모였을 이윤열이 근처에서 진을 치고 기다릴 것이 뻔한 상황에서 주위의 상황을 파악하는 게 필수적이다. 당연히 자신의 앞마당 앞에 있는 잴나가 감시탑을 확보해야 한다. 잴나가 감시탑을 두고 벌어진 두 선수 해병이 번갈아 자리 뺏기를 한 것은 이때문에 벌어진 것이다.
 결국 잴나가 감시탑을 뺏지 못한 임요환은 자신의 공격 타이밍을 이윤열에게 노출시키고 만다. 비단 타이밍 뿐이 아니다. 병력의 규모 또한 노출되게 된다. 물론 임요환은 당연히 나가면서 다수의 병력으로 잴나가 감시탑에 있는 이윤열의 해병부터 제거하지만 이미 그 자체가 자신이 공격에 나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탄인 것이다. 서로 예상되는 공격 진로에 스캔을 찍어서 상대의 규모를 확인하는 플레이를 통해 백전노장임을 보여주면서, 둘은 이윤열의 앞마당 앞에서 만나게 된다. 근데 여기서 그냥 플레이 했다가는 당연히 다수 병력 싸움에서 일반적으로 실력이 임요환보다 뛰어난 이윤열의 특성을 알고 있는 임요환은 두 가지를 통해 이를 극복하고자 한다. 하나는 탱크를 언덕에 배치하여 시야의 이점을 가져가는 것이며, 또 하나는 해병을 의료선에 태웠다가 상대 진영에 낙하시키는 플레이로 자폭 플레이를 유도하는 거였다. 근데 과연 진영을 짜는데 있어 천재인 이윤열은 자신의 병력을 언덕 시야 밖에 놓고, 탱크 앞에는 해병을 배치함으로써 의료선의 접근을 차단하였다. 이 상황에서 오히려 역으로 이윤열이 공중유닛과 스캔을 통해 시야를 확보함으로써 언덕에 있는 임요환의 병력에 손실을 입히면서 경기는 이윤열 쪽으로 기울게 된다. 과연 이윤열은 천재였다.
 이후 이윤열의 공격에 임요환은 분명히 선방을 하였지만 결국 밀리게 된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 진영의 허점-은폐된 유닛을 잡아낼 수 있는 궤도사령부가 1개밖에 없다는 점-을 찾아내어 은폐된 밴시를 최후의 카드로 내보낸 것은 과연 임요환! 이라는 탄성을 자아내게 하였다. 비록 졌지만 임요환 또한 끝까지 멋진 경기를 보여주었다.
(만약 임요환의 은폐된 밴시가 성공하여 역전승을 거두었다면 스타리그 사상 두고두고 입에 오르는 경기가 되었을 듯.)

아무튼 이 경기를 통해 임요환의 밴시에 대해서는 스타1의 드랍쉽 만큼이나 공포의 대상이 될 듯하다. 이미 앞선 경기에서 밴시를 통해 무손실 경기를 만들어낸 적이 있는 임요환인데다가 마지막까지 밴시로 상대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만큼. 이런 표어 하나 나오지 않을까?

 "불 꺼진 우주공항도 다시보자."

3. 2 Set - MAP:잴나가 동굴

 2 set는 양 선수가 초반에 밴시 싸움으로 가면서부터 이미 임요환 쪽으로 기울었다고 할 수 있었다. 밴시는 주력 전투 유닛이라기보다는 상대 진영에 견제를 하거나 전투 중에 공격을 보조하는 유닛이다. 당연히 밴시 플레이에 능한 선수는 마이크로 콘트롤을 주 장기로 하는 임요환일 수밖에 없다. 특히나 임요환은 이전의 경기에서 고도의 심리전을 바탕으로 한 밴시 플레이를 보여주지 않았는가? 이윤열의 밴시 플레이가 분명히 훌륭했음에도 막히고 임요환의 밴시는 견제에 성공한 것은 이때문이었다. 밴시 싸움은 마이크로 콘트롤에 기반을 둔 심리 싸움이다. 이윤열은 양 선수 모두 우주공항 테크를 탄 것을 보고, 향후 공중전이 벌어질 것을 예상하여 밤까마귀(Raven)를 뽑았다. 반면 임요환은 바이킹(Viking)을 뽑았다. 이윤열은 임요환 또한 자신처럼 밤까마귀를 뽑거나 아니면 궤도사령부에서 에너지를 비축하여 은폐된 밴시에 대비할 것이라고 본 것이었다. 그래서 은폐 업그레이드도 했다가 중간에 취소했다. 그런데 임요환은 달랐다. 에너지를 비축하지도 않았다.- 남은 에너지를 지게로봇 투하에 사용- 또한 밤까마귀를 생산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밴시에 대한 대비를 안한 것은 아니다. 밴시가 오는 길목에 해병을 정확히 순찰시켜 놓았다가 요격시켰다. 미묘한 차이기는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임요환은 이미 자원 채취에 있어 이윤열보다 상대적인 이득을 가져갔다. 여기에 임요환의 밴시가 견제에 성공함으로써 이윤열은 상대적으로 자원 채취에 있어 열세를 가져가게 되었고 이는 경기 내내, 이윤열이 임요환과 비슷한 물량만 가져가는 양상을 보여주게 하였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임요환에 '상대를 거지로 만드는 플레이'가 성공했다고 할까? 임요환 에게 이윤열은 물량만 폭발하지 않는다면 해볼 만한 상대다.
 이후 경기는 양 선수가 앞마당을 가져간 상태에서 다수의 해병과 탱크가 팽팽하게 맞서는 상황이었다. 근데 이때도 중요한 것은 본진의 자원 채취 량이 밴시 견제로 이미 벌어져 있는 상황이라는 점이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진작에 이윤열이 임요환보다 월등하게 많은 병력을 가져갔을 것이다. 병력의 규모가 서로 동등하니 어느 누구도 쉽게 전면전을 벌이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모두 수풀 뒤 시야 밖에서 공격 하는 측면 돌파를 시도하게 된다. 근데 여기서 눈부신 것이 임요환의 판을 읽는 감이다. 이 부분에서 이미 백전노장인 이윤열도 만만치는 않지만 이윤열의 감이 경험에 의한 것이라면 임요환은 거의 본능에 가깝다고 할까? 자신이 수풀 뒤로 공격에 들어감과 동시에 자신의 수풀 뒤쪽으로도 병력을 보냈다. 캐스터가 언급한 것처럼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일 것이다. 자신이 생각했나면 상대도 생각해 냈을 것이라고 추측한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은 맞아떨어졌다. 그러나 이윤열은 그러하지 못했다. 이윤열은 측면 공격을 시도하기만 했지, 자신의 측면에 방어 병력을 동시에 보내는 플레이를 하지는 않았다.(이윤열의 주 병력은 계속해서 센터 길목에 진을 치고 있었다가 뒤늦게 공격받는 앞마당으로 올라갔다.) 그 결과는 결국 승패를 갈랐다.
 또한 승리의 쐐기를 박은 것은 이윤열의 랠리포인트-유닛이 건물에서 생산되어 나와 자동으로 자리 잡는 위치-를 파악하여 해당 동선에 해병+탱크를 배치한 것이었다. 이윤열이 중간에 랠리포인트를 수정할 때까지 추가 병력이 진영을 짜기도 전에 하나씩 각개 격파를 당하였다.
 만약 이윤열의 팬이라면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을 수 있는 경기였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첫 승을 거둔 이윤열이었으니까, 1승 정도는 내주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도 있었다. 적어도 다음 경기를 볼 때까지는 말이다.

4. 3 Set - MAP:샤쿠라스 고원

 초반부터 이윤열은 군수공장 건설 후, 기술실에서 지옥불 업그레이드를 선택함으로써 메카닉 테란-기계 유닛 중심으로 병력을 구성하는 테란-을 예고하였다. 스타2에서는 테란에도 프로토스의 마법 유닛과 견줄 정도로 강력한 바이오닛 유닛들이 많이 생겨서 많은 선수가 바이오닉 테란-생체 유닛 중심으로 병력을 구성하는 테란-을 구사했는데, 애초에 해병+테란 같은 클레식한 플레이를 주로 일삼을 정도로 불곰 같은 유닛은 사용하지 않는 이윤열이다보니 어찌 보면 충분히 가능한 플레이기도 했다. 근데 테란 대 테란 전에서, 그것도 임요환을 상대로 이윤열이 메카닉 테란을 꺼내 들었다는 점에서는 한껏 기대가 부풀어오르게 되었다. 더군다나 우연한 일치라고 할 수 있지만, 이전의 경기에서 1패 후 상의를 탈의한 이윤열이 한껏 더 무서운 집중력으로 승리를 잡아내었던 만큼-일명 이윤열의 '상의탈의 버프'- 이 날도 1패 후, 상의를 탈의한 이윤열이 이를 이어나갈지 기대가 된 것도 사실이었다.
 3 set에서 이윤열이 가져온 빌드는 '군수공장-무기고'라는 메카닉 테란에 최적화된 빌드였다. 이는 유닛으로 보면 화염차+토르 조합을 가져가게 하는데, 임요환이 초반 밴시를 활용한 견제 후, 주력 병력을 뽑는 이전 경기에 비추어보면 임요환이 준비한 빌드의 파해법이라고 말할 수 있는 빌드였다. 타이밍, 유닛 상성 모든 면에서 최적화된 빌드였다.
 근데 뭐라고할까 이 경기를 보면서 이윤열이 이 빌드에 아직 적응을 못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초반에 건설로봇 숫자에서 이미 우위를 가져간 상황에서 토르가 바로 공격을 가지 않고 임요환의 추가 밴시를 막아주기만 했어도 임요환으로서는 딱히 수가 없는 상황이었는데 뭐가 그리 급했는지 이윤열은 토르와 화염차를 모아 공격을 보냈다. 천하의 임요환조차 수 싸움에서 밀린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음을 증명한 것이 바로 두 번째에도 밴시를 그냥 보낸 거였다. (이미 이윤열은 본진에 미사일 포탑까지 지었음에도) 임요환으로서도 이윤열이 이러한 빌드를 들고 나올 것은 전혀 예상 못 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경기 중에 이 빌드에 대한 파해법을 만들어낼 여유도 없었을 테니. (조금만 타이밍을 내주면 상대의 공격이 들어오는 프로들의 공식 경기이니만큼) 뭐랄까. 이윤열이 너무 조바심을 냈다고 할까. 밴시 막고 토르 모아서 건설로봇과 함께 상대진영에 들어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나야 경기를 보는 처지니까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거지만.) 임요환의 두 번째 밴시의 공격을 그대로 맞으면서 무리하게 초반 병력을 몰아서 러쉬를 간 것은 분명히 패인이었다. 캐스터의 말처럼 하다못해 본진에 바이킹 하나라도 있었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랐을 텐데...
 비록 승리는 임요환이 가져갔지만 이윤열 또는 다른 선수가 이 빌드를 조금만 다듬어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낸다면 테테전 최강이라고 일컫는 임요환에 대해서는 파해법이 될 수 있는 전략이었다. 이때문에 이윤열의 팬이 아니더라도 정말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경기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전략이 대중화될 시점이면 임요환은 이에 대응하는 새로운 전략, 새로운 빌드를 개발해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생각이 드는 자신을 바라보며 역시 이 둘은 천재, 그리고 황제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4. 4 Set - MAP:델타사분면

 앞서 '전략'은 임요환으로, '물량'은 이윤열로 얘기하였지만. 이 날 경기만은 3 set에 이어 4 set에 서도 이윤열이 전략적인 측면을 보여주는 날이었다. 특히 지고 있는 상황에서 전략적인 플레이, 새로운 빌드를 꺼내 들었다는 것은 그만큼 그 빌드로 이 맵에서 연습을 많이 해왔다는 것이었고 특히 4 set는 천제 테란 이윤열에 걸맞는 플레이였다.
 또한 이날 이윤열이 꺼낸 카드는 유령(Ghost). 스타2에 와서 유령의 활용도가 좀 더 다양해졌지만 변함없이 유령하면 떠올릴 수 있는 것은 '핵'이다. 공식 경기에서 핵을 쓰는 플레이를 보는 경우가 정말 손 꼽을 정도이기 때문에 어느 선수든 이러한 핵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이슈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이윤열의 경우는 단순히 팬서비스 차원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다른 테란 플레이어들에게 더 큰 가능성을 보여준 경기였다.
 4 Set에서 이윤열은 초반부터 유령을 생산하면서 테테전-테란과 테란의 전투-에서 유령이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었다. 밴시에 상성 적으로 우위를 가져가는 유령을 사용하여 임요환의 밴시를 통한 초반 견제를 차단해주었고, 바이오닉 병력과의 싸움에서 상대 불곰을 저격으로 잡아줌으로써 힘 싸움에서도 우위를 가져다주었다. 다만 임요환이 정말 잘해준 것은 어차피 유령이 주력 병력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만큼, 자신의 주력병력이 모일 때까지 최대한 유령과의 교전을 피해줌으로써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자신의 타이밍을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사실 경기 중반에 임요환이 이윤열의 조이기라인이 부담스러워서 건설로봇까지 동원하여 걷어내려고 했는데 유령 때문에 실패하는 것을 보면서-임요환의 건설로봇도 유령은 못 이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잠시 이윤열이 이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역시 유령은 필살 카드는 아니었다. 아니 사실 유령의 핵이 제대로 먹히기만 했다면 필살 카드가 될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다. 이윤열이 이번 경기에서 보여준 핵의 용도는 서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의 진영을 흐트러뜨리고 그 틈에 자신은 유리한 진을 치는 거였다. 핵이 떨어지면 일단 병력을 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이를 이용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형태로 진을 치려고 했던 것이다. 근데 상대가 임요환이다보니 이게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핵이 떨어진 직후에 원래 자리로 돌아와 진을 치는 속도가 워낙 빨랐던 것이다. 과연 마이크로 콘트롤의 달인 다웠다. 보는 처지에서는 재미가 쏠쏠하긴 했는데, 마치 운동회에서 호루라기를 불자마자 자리 뺐기를 하는 선수처럼, 핵이 떨어짐과 동시에 양 진영의 탱크와 바이오닉 병력이 재빨리 가운데로 들어와 서로 먼저 유리한 진을 치려고 하는 모습은 정말 다시는 볼 수 없는 명장면이었다.

 임요환은 묵직하게 자신의 타이밍을 기다리다가 불곰과 탱크가 일정 숫자 이상 모이자 한 방 러쉬로 경기의 승리를 가져갔다.

5. 경기를 마치고


 최종 승리는 임요환에게 돌아갔지만 3 set에 이어 4 set에서 보여준 이윤열의 플레이는 테란 플레이어들에게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장이 되었다. 그리고 역시 명불허전. 둘의 경기는 단 한 순간도 놓치기 어려운 명장면의 연속이었다. 멋진 경기를 보여준 두 선수에게 팬으로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싶다.


P.S. 이 날 경기의 생방 접속자 수 250만명,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다시보기 200만명. 500만명은 당연히 될 것 같은데... 여기에 집계되지 않은 해외 시청자까지 포함하면. 헐. 웬만한 지상파 방송 능가하는 시청률일 듯. 오직 인터넷TV로만 방송했다는 핸디캡을 생각하면 엄청난 숫자...
 곰TV와 블리자드는 이 두 선수에게 수익 일부라도 떼어주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앞으로도 계속 흥행을 이어가려면...





STARCRAFTⅡ OPEN 시즌2
임요환 vs 이윤열 [GSL 8강 4경기]
http://ch.gomtv.com/427/28099/39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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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4 01:11 2010/11/04 01:11
Posted by 그냥
Game l 2010/11/04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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