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s Diary

앞서 본 블로그에서 안내해드린 데로 근,현대의 국학운동을 조망해보는 학술회의가 지난 10일 열렸습니다.

아래는 각 신문에 보도된 내용들

문화일보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 ··· 00280020
서울신문 :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 ··· 09024001
머니투데이 : http://www.moneytoday.co.kr/view/mtvie ··· link%3D1
대전일보 : http://www.daejonilbo.com/news/newsite ··· 3D775592
연합뉴스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 ··· 02249932

* 개인적으로 찾아본 거라 누락된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참가하지 못한 분들을 위한 간단한 요약

◆ 국학의 태동과 전개
 우리나라에서 국학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시기는 1930년대.
 당시는 국권을 상실한 때였으므로 한국적인 것이 말살될 위기에 처하자 일부 학자들이 한국적인 것을 살려나가고자 하는 분위기에서 나타남. 이를 조선의 학문이라는 뜻으로 ‘조선학’ 또는 ‘국학’이라 부름.

 포괄적 국학의 태동은 조선후기 실학에서 나타나는 자아의식의 각성에서 찾을 수 있음.
 역사학 분야에선 안정복의 ‘동사강목’, 이긍익의 ‘연려실기술’, 한치윤의 ‘해동역사’ 등이 그 예.
 특히 소론계의 이종휘는 단군의 계보가 부여·고구려로 이어진다는 ‘부여-고구려 정통론’을 내세움으로써 처음으로 대륙에 대한 관심을 나타냄. 유득공의 ‘발해고’를 시작으로 비롯된 발해에 대한 관심 또한 대륙사관적 역사인식에 큰 기여.

◆ 근대 국학운동의 성립
 근대 국학의 의미와 실체를 가장 잘 드러낸 인물은 홍암 나철(1863∼1916).
 유학자였던 나철은 1905년 단군교에 입교. 1909년 ‘단군교 포명서’를 반포, 단군교(후일 대종교)를 다시 일으킴.
 국학의 관점에서 나철의 단군신앙 중광(重光·다시 일으킴)은 동학사상이나 증산사상과도 차이가 큼.
 나철의 단군신앙은 박은식의 ‘국혼(國魂)’, 신채호의 ‘국수(國粹)’와 의미가 통하는 것으로 국학의 정수임.

 대종교 외에 해방 이전에는 ‘조선광문회’와 ‘조선어학회’ 그리고 해방 이후의 ‘한얼청년회’와 ‘국학원’을 통해 근·현대 국학운동이 이어짐. 최남선 등이 주도한 ‘조선광문회’는 고문헌의 보존과 반포, 옛 문화의 선양 등을 목적으로 1910년 서울에서 설립.

 해방 후 1970년 ‘한얼청년회’, 1980년 ‘한문화원’(2002년 국학원으로 개칭)이 설립되어 국학운동을 활발히 전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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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5 15:02 2008/09/15 15:02
Posted by 그냥
Kook-hak l 2008/09/15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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