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소설책도 아닌데. 한달음에 읽어버렸다.
애초에 사려던 책도 아니었고 당연히 읽으려던 책도 아니었다.
근데 마치 마법에라도 이끌린 듯 책을 구매했고 산 그날 바로 읽기 시작해서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계속 읽었다.
나에게도 이 책이 운명이었나 보다.
이 책에는 정말 주옥 같은 문장들이 쉴 새 없이 나온다. 문장가로서 뛰어난 문장을 썼기 때문이 아니다. 바닥에서 시작하여 국정 최고 지도자로서의 자리까지 역임하면서 끊임없이 고민한 흔적의 산물이 문장에 드러나는 것이다. 동시대를 살았던 내가, 그리고 우리가 가졌던 수많은 국정현안에 대한 근본원인과 해결책을 그는 짧고도 명쾌하게 짚어낸다. 이토록 훌륭한 지도자를 가지고도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한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수많은 시스템의 한계와 문화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문제들을 해결한 것은 그 분과 그 분 참모들의 공이다. 나는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 분에 넘치는 지도자였다.
혹시나 오해를 할까봐 미리 언급하는 건데, 그렇다고 이 책이 그 분에 대한 자기 포장으로 되어 있지는 않다. 물론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이 책이 마치 스스로에 대한 변명을 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오히려 그는 변명해도 무방한 것들조차 변명하지 않고 모두 자기 잘못으로 시인해버렸다. 그렇다고 이 책이 패배주의에 갖혀 있는 책은 아니다. 늘 그랬듯이 있는 그대로 자기가 생각한 것, 느낀 것을 토로한 책이다. 그 분은 정치인생 내내 그래왔다. 평가는 철저하게 국민에게 맡겼다. 그 평가에 방해가 될 그 어떤 포장도, 윤색도 원하지 않았다. 정치인으로서는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다.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진보주의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면에서 그 분의 죽음이 진보의 패배가 아니라는 것이 맞다고 본다. 우리 나라에서 보수와 진보는 이념을 대의명분으로 놓고 사실은 그 이념과 관계없는 두 이익집단의 대결구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약자들의 편에 서면서 자연스럽게 진보 진영의 보스가 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는 우리 나라 정치 역사상 처음으로 보스이기를 거부한 보스이다. 그러한 면에서 그를 진보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그 분에 대한 가장 공정한 평가는 법률가 노무현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완벽한 법치주의자였다. 그가 인권운동에 뛰어든 시초는, 자신이 공부한 법 데로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에 있었다. 나는 그러한 면에서 한나라당과 보수 언론이 국가정체성이나 법치주의 가지고 그 분을 공격했던 것이 가장 경멸스러웠다. 자기들은 늘 법을 이용하려고 했으면서 항상 법에서 정한 테두리 안에서만 제한적으로 권력을 행사해왔던 분을 그렇게 비난한 것은 정말 비양심적인 행위라고 생각한다. 다들 알다시피 우리 나라는 결코 법치국가가 아니다. 법치국가를 표방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 나라는 자본 만능주의가 지배하는 나라다. 법이라는 것은 단지 권력자들이 보다 지배를 편하게 하기 위해 이용하는 수단인 것이 안타깝지만 현재의 대한민국 현실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권력을 잡은 사람이, 더군다나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는 사람이, 그 권력을 사용하지 않고 철저하게 법 데로 한다는 것은 웬만한 의지가 아니고서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 분은 늘 그래왔다. 그게 그 분이 생각하는 원칙에 따른 통치였다. 그 원칙이 지켜져야 사람들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분이 진짜로 가지고 있던 가치는 ‘사람 중심’이었다. 그는 진보주의자라기보다는 휴머니스트였다.
적은 도를 넘어서는데, 서로 이 선만은 넘지 말자고 얘기한 선을 수시로 넘어서 공격하는데. 자신은 항상 그 선을 지키며, 그 안에서 싸운다. 정말 눈물 나는 상황이다. 답답하지만, 답답하면서도 도무지 미워할 수가 없다.
그가 속한 진보 진영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모든 면에서 열세이다. 그 분 스스로 얘기했듯이 두 분의 대통령이 진보 진영에서 나온 것은 매우 특수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다. 진보진영이 체력이 강해서, 권력 싸움에서 보수를 이겼기 때문이 아니다. 근데 사람들은 종종 잊곤 한다. 마치 보수와 진보가 동등한 환경에서 싸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더 나아가 참여정부 시절에는 진보진영이 더 우세한 상황에 있었다고 착각까지 하고 있다. 정말로 큰 착각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의 정부 시절에나 참여정부 시절에서나, 그리고 지금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여전히 국가의 핵심 권력은 보수 진영의 손에 있고, 무엇보다 자본만능주의의 대한민국에서 대부분의 자본은 보수진영 편이다. 이는 딱히 자본이 정치적 이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보수 진영은 애초에 지켜야 할 원칙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모든 권력이 자본과 유착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진보 진영은 어찌되었든 나름 원칙이 있기 때문에 자본과 거리를 둘 수 밖에 없다. 자본의 힘이 절대적인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는 엄청난 핸디캡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진보진영의 보스였지만 대통령이 되고 나서 진보진영을 위해 봉사한 적이 별로 많지 않다. 진보, 보수를 떠나서 장기적으로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여 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덕분에 자신을 지지하던 층으로부터도 공격 받았다. 정말 외로운 싸움이지 않았을까? 그 분이 애초에 인기와 외부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는 정치 인생을 살아왔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본다. 보통의 정치인이라면 분명 어느 시점에선가 타협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분이 쌓아놓은, 참여정부가 만들어놓은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많은 반석들이 정권 교체 후, 바로 철거당하거나 사라져버린 것들을 보며 정말 안타까울 따름이다. 지금의 정부는 그것들 중 대부분의 의미를 이해조차 못했고, 애초에 이해하려는 마음도 없었다. 그러나 이는 대부분의 국민 모두가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도덕성의 문제를 떠나서 지난 대선에서 우리는 국가의 각종 현안을 차기 정부가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해 제대로 논의하지 않았다. 모든 논의가 인물 중심이었다. 그러나 인물이 바뀌더라도 국가의 중요한 정책 기조가 바뀌는 일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된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바꿀 수 있는 게 있고, 바꿔서는 안 되는 것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매 번 정권이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뀌는 일이 일어나는 것은, 합리적인 토론과 정책 중심의 선거가 이루어지지 않은 데서 일어나는 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점을 정말 아쉬워했다. 그래서 정치개혁을 하려고 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 조차 하지 않았던 정치개혁을 그는 임기 중에 수시로 시도했다. 그러나 결과는 오히려 자기 지지층의 세만 더 약해졌을 뿐이었다. 결국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진보 진영이 정권 재창출을 못한 이유에는, 보수 진영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끊임없이 노크하였던 정치 개혁에 응답하지 않은 상태에서 진보 진영 혼자서 정치 개혁 한답시고 자기들끼리 싸웠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들이 참여정부 5년 동안 정치개혁을 못했기 때문이었다. 진보진영 내부에서도 기득권을 가진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이 나뉘고, 기득권을 가진 이들은 그것을 놓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인터넷을 보면 네티즌들이 정치 과잉 상태에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더 정치에 몰입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것이 온라인 상에서만의 여론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확대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왜냐하면 정치적 무관심을 이용하여 지금 기득권층들은 많은 사람들이 누려할 혜택을 빼앗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마치 공산주의 혁명가처럼 들리겠지만, 모두가 낸 세금으로 만들어진 자산들을 특정한 개인이 불법적으로 취하고, 모두를 위해 행사하도록 되어 있는 공권력을 특정한 이익집단을 위해서만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지금은 정말 모든 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감시자의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가슴 아프지만 현실이 그러하다.
옛날에는 역사 속의 주인공들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읽으며, 내가 사는 동시대에는 그러한 위인들이 없음에 한탄한 적이 있다. 하다못해 50년만 일찍 태어났어도 김구 선생님 같은 분과 동시대를 살았을 수 있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지금은 그러한 면에서는 여한이 없다. 이런 훌륭한 분과 동시대를 살았고, 시대의 아픔을 함께 고민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하다. 그 분이 하지 않았으면 많은 다른 사람들이 했어야 할 고민들이 많다. 그러나 그 분은 항상 앞장서서 고민했고, 또 자신이 생각한 대안들을 끊임없이 현장에서 실행에 옮긴 덕분에 우리는 풍부한 데이터를 갖게 되었다. 그러한 분이 마지막 여정으로 죽음을 스스로 선택할 수 밖에 없게 만든 데 대해 정말 죄송할 따름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